군사적 측면에서의 한미관계 – 상호보완적 동맹관계

1968년은 한미동맹이 보호자-피보호자(patron-client)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해이다.

한미안보협의회의는 한국의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체제에서 벗어나

한국과 미국 양국이 대화와 협의를 통하여 결정하는 체제로 전환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한편, 베트남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적극적 군사개입 정책에 대한

심한 반발로 분란을 겪게 된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닉슨대통령은 1969년 7월 괌 독트린을 발표하여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괌 독트린의 발표와 함께 한미동맹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되었다.

미 정부는 의회의 권유로 1971년 6월까지 아시아에서

총 4만 2,000명의 미군을 철수시키기로 하였는데,

그 중에는 2만 명의 주한미군 7사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정부와 국민들의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불안은 극심했다.

이에따라 정부는 대미협상 중 국회 결의와 내각 총사퇴 불사론까지 내세우며

미군 감축에 반대하였으나 결국 1971년 3월에 전격적으로 미군 감축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 정부가 ‘자주’적인 국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고,

이때부터 한국의 자주국방의 의지는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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